영일 냉수리신라비 : 국보제264호
소재지 : 포항시 북구 신광면 토성리342-1 신광면사무소
연 대 : 신라시대
이 비는 1989년 마을주민이 밭갈이를 하던 중 발견하였으며, 재산분배를 확인하는 증명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형태는 네모난 자연석으로 밑부분이 넓고 위가 줄어드는 모습이며, 앞면과 뒷면, 그리고 윗면의 3면에 글자를 새겼다. 비문은 거의 닳지 않아 눈으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다. 글자는 총 231자이고 서체는 해서체로 보이나, 예서체의 기풍이 많이 남아 있어 비문의 형태와 글씨체면에서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 울진봉평신라비(국보 제242호)와 매우 비슷하다.
정혜사지십삼층석탑 : 국보제40호
소재지 :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1654
연 대 : 통일신라
경주 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1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1층 탑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장식처럼 보인다. 큰 규모로 만들어진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사각형의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안에 다시 보조기둥을 붙여 세워 문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문을 마련해 놓은 것은 열린 공간을 추구하고자 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조각이 아닌 별개의 다른 돌로 만들어 놓았고, 직선을 그리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즈음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13층이라는 보기 드문 층수에, 기단부 역시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비교적 옛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층을 크게 부각시킨 후 2층부터 급격히 줄여나간 양식으로 인해 탑 전체에 안정감이 느껴진다
월성 남사리사지삼층석탑 : 보물제907호
소재지 :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234-2
연 대 : 통일신라
이름없는 옛 절터에 남아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1975년에 보수하였는데 이 때 위층 기단의 북쪽 가운데돌을 새로 보충했을 뿐 대부분은 원래의 모습대로 잘 남아있다.
아래층 기단은 밑돌·가운데돌·맨윗돌을 모두 붙여서 4장의 돌로 짰고, 가운데돌의 모서리와 네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두었다. 위층 기단에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에서도 역시 몸돌의 네 모서리에 기둥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커서 탑 전체에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밑면의 받침수는 각각 4단씩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기단부의 섬세한 조각과 완벽함에 비해 탑신의 꾸밈이 형식화된 면이 보인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석탑양식에 간략과 생략이 심했던 9세기 말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경주 남사리북삼층석탑 : 문화재자료 제7호
소재지 : 경주시 현곡면남사리313-4
탑이 있었던 사찰이나 탑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탑신(塔身)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네 귀퉁이가 많이 훼손된 지붕돌은 밑면에 새긴 5단의 받침이 비교적 선명하다.
탑의 건립시기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 1973년 경주경찰서 신청사를 준공할 때 기단부(基壇部)만 남겨두고 지붕돌 3개를 경찰서 정원으로 옮겨 보존해 오다가 지역 주민들의 건의에 따라 1995년 부족한 탑재를 보충하여 복원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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