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안동지역 문화재

소솔바람 2010. 9. 23. 22:12

경상북도 안동. 내가 태어나서 자란곳 .. 흔히들 안동하면 양반의 고장이라 한다.한옥과 정자 그리고 석탑.전탑등 문화재가

수없이 많다.천년의고도 경주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이번 추석 선산, 조상 성묘를 마치고  안동시내에 있는 문화재 몇 점을

답사하고 소개하고자 한다. 어릴적 서부초등학교 다닐적에 평화동 철도 관사옆의 삼층석탑은 매일 봤었지만 다시 마주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지난7월말 이천동 석불을 답사할 때 만난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여행온 이방인에게 봉정사와 학봉종택을 구경시켜주고 괜히,안동이 나의 Home Town이라 자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어딜가나 안동은 문화재가 여기저기 산재 해

있다.안동의 문화재 답사를 보름동안 다녀도 못다 할 것같다.오늘 가본 안동에는 국제 탈춤 폐스티벌 준비가 한창 이었다..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 : 보물 제56호

소재지 : 안동시 운흥동 231

연 대 : 통일신라

 안동역 구내에 있는 탑으로, 전탑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안동 지방에는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전탑이 다소 있는데, 전탑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이른다.
탑은 무늬없는 벽돌로 5층을 쌓았다. 몸돌에는 층마다 불상을 모시기 위한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했고 특히 2층 남쪽면에는 2구의 인왕상(仁王像)을 새겨두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사용한 것에서 오는 제약때문에 처마 너비가 일반 석탑에 비해 매우 짧다. 밑면의 받침수는 1층부터 차례로 10단·8단·6단·4단·3단으로 줄어들었고 처마끝에는 기와골을 받기 위해 총총한 나무를 얹고 4층까지 기와를 입혀 놓았다. 이러한 지붕모양은 탑신의 감실과 더불어 목탑양식의 흔적을 보여준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으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다.
이 전탑은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동국여지승람』이나『영가지(永嘉誌)』에 기록된 법림사(法林寺)의 전탑으로 추정된다.『영가지』에 법림사전탑이 7층이라는 점, 조선시대에 크게 보수를 하였다는 점, 탑의 머리장식은 법흥사탑(法興寺塔)과 같이 금동제였으나 임진왜란 직후 명나라 군인들이 도둑질해 갔다는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지금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안동 안기동 석조여래좌상 : 보물 제58호

소재지 : 안동시 안기동152-13

연 대 : 통일신라

현재 불상의 머리는 후대에 새롭게 붙여 놓은 것으로 발견 당시에는 몸통과 대좌만 있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 역시 원래 불상과 같이 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비록 원래의 모습이 많이 없어지고 보존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나 세부의 조각 수법이 우수하고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 옷은 소매 하나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였고, 짤막하게 이어진 옷주름 역시 활달한 모습이다.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끝이 땅을 향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은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비록 불상의 신체만 남아 있지만 균형 잡힌 자세나 둥글게 처리된 어깨, 부드럽게 흘러내린 옷주름 등 힘있고 사실적인 모습을 통해 이 작품이 통일신라 후기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안동 옥동 삼층석탑 : 보물 제114호

소재지 : 안동시 평화동71-108

연 대 : 통일신라 

경북 안동시 평화동에 있는 3층 석탑으로, 탑이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 있어 절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으며, 절이름 또한 알 길이 없다.
탑신(塔身)을 받치고 있는 기단(基壇)을 위·아래 2단으로 꾸민 3층 석탑의 모습으로, 주목할 점은 아래층 기단에 아름다운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윗층 기단은 윗면에서 상당한 경사를 보이고 각 모서리도 약간 위로 치켜 올려진 전혀 새로운 형식을 갖추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지붕돌로 보일 정도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지붕돌은 처마밑이 직선이며,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들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 있다.
이 탑은 지붕돌이 넓어 매우 안정된 모습을 보이며, 전반적으로 그 비례감이 아름답다. 탑이 세워진 시기는 통일신라 중기 이후로 보인다

 

 

 안동 석빙고 : 보물 제305호

소재지 : 안동시 성건동 산225-1

연 대 : 조선시대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이다. 특히 이 석빙고는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국왕에게 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영조 13년(1737)에 지어졌다. 형태는 동·서로 흐르는 낙동강 기슭의 넓은 땅에 강줄기를 향하여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으며, 입구는 특이하게 북쪽에 옆으로 내었다.
안으로 계단을 따라 들어가면 밑바닥은 경사져 있으며, 중앙에는 물이 강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배수로가 있다. 천장은 길고 크게 다듬은 돌들을 무지개모양으로 틀어올린 4개의 홍예(虹霓)를 세워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고, 각 홍예 사이는 긴 돌들을 가로로 채워 마무리하였다. 천장의 곳곳에는 환기구멍을 두었는데, 이는 안의 기온을 조절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 바깥까지 연결하였다.
전체적으로 규모는 큰 편은 아니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특히 석빙고는 그 위치가 매우 중요한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여 지금은 본래의 위치보다 높은 곳으로 옮겨왔다. 이전에는 바로 옆에 강이 흘러서 얼음을 운반하기가 아주 쉬웠을 것으로 보인다.

 석빙고 내부

안동 안기동 삼층석탑 : 문화재자료 제18호

소재지 : 안동시 안기동144-2

안기동 민가 안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다.
아래층 기단은 없어져 시멘트로 만들어 놓았고, 위층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고, 특히 1층 몸돌에는 네모난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설치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낙수면이 짧아 경사가 급하고 네 귀퉁이가 치켜올라갔다. 지붕돌 밑면에 새긴 받침수가 1층은 6단, 2층은 5단, 3층은 4단으로 되어 있어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꼭대기에는 후에 새로 만들어 얹은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모양의 둥근 돌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지붕돌의 양식과 밑면의 받침 수가 일정하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안기동석불좌상(보물 제58호)이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교 있어 같은 사찰 내의 유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말·고려초 안동지역의 불교조각 유물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동 선성현객사 : 시도유형문화재 제29호

소재지 : 안동시 성건동 산225-1

고려와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아건물이다. 조선 숙종 38년(1712)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전해오는데, 안동댐 건설로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一자형 구조를 지니고 있는 이 객사는 앞면 11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벽돌이 깔려 있는 가운데 5칸은 중심공간인 정당으로, 온돌방·대청·툇마루로 이루어진 양옆 3칸씩의 익실보다 지붕이 한층 높게 되어 있다
중심공간인 정당에서는 원래 궐패를 모셔놓고 초하루·보름에 대궐이 있는 쪽을 향하여 절을 하였고, 양 옆의 익실은 사신이나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숙소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객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안동 운흥동 당간지주 : 시도유형문화재 제100호

소재지 : 안동시 운흥동 231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거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의 양쪽에 서서 이를 지탱시켜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가 속해 있던 절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동쪽에 있는 동부동5층전탑과 같은 절의 유적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때 일부가 파손된 이 당간지주는 양 기둥에 아무런 조각을 새기지 않아 간결하며, 기둥 사이에는 당간을 꽂는 둥근 받침돌이 놓여 있다. 기둥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을 파 놓았다.
윗부분의 일부가 파손되어 완전한 모습은 아니나 소박하고 간결한 모습이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

 

 

안동 월영대 : 시도유형문화재 제22호

소재지 : 안동시 성건동 산225-1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달빛을 감상하던 임원의 암벽에 새긴 이름으로, 달이 비치는 대(臺)라는 뜻이다. 원래는 안동 월곡면 사월리의 소나무숲에 ‘금하재’라는 정자와 함께 있었으나, 197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현판의 글씨는 해서체로 써있으며 운치있고 우아한 선비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안동 의촌동초가도토마리집 : 시도민속자료 제6호

소재지 : 안동시 성건동 산225-1

안동 의촌동에 있던 농가로 초가 도토마리집이다. 언제 지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며, 안동댐 건설 공사로 인하여 1976년 지금 자리로 옮겨 지었다.
일반적인 농가는 외양간·부엌·안방·웃방으로 一자형을 이루는 것과 달리, 이집은 웃방이 ‘중방’으로 부엌 한쪽에 붙어 있다. 마치 베틀의 도토마리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도토마리집 ’이라 불리고 있다.
도토마리집은 까치구멍집·봉당집 등과 함께 이 지방 민가의 독특한 형태이다.

 

안동 사월동초가토담집 : 시도민속자료 제14호

소재지 : 안동시 성건동 산225-1

 안동지방의 농가로 초가 토담집이다. 원래는 사월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6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이 집은 기둥을 세우지 않고 판축방식으로 쌓은 토담집이다. 판축은 판과 판 사이에 흙을 넣어 단단하게 다지거나, 판대기 양쪽에 흙을 쌓는 것이다. 목재는 도리·서까래·문틀 등에만 사용되었다.
두꺼운 초가지붕으로 추위와 더위를 효율적으로 방지하여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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