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상주화달리삼층석탑.증촌리석불입상.도리사석탑

소솔바람 2010. 9. 24. 02:13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 : 보물 제117호

소재지 :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857

연 대 ; 통일신라

사벌국(沙伐國)의 왕릉이라고 전해지는 곳의 서쪽에 있는 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며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탑신(塔身)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는데, 1층 몸돌은 유난히 넓고 커서 기단보다도 높다. 각 층의 몸돌을 덮는 지붕돌은 처마가 반듯하며 네 귀퉁이의 위로 들린 정도가 강하여 탑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탑의 머리장식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전반적으로 비례가 불균형하고 기단부의 일부가 훼손되어 기이한 형태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기단 위에는 머리가 없는 1구의 석조여래좌상이 1층 몸돌에 기대어 앉아 있는데, 탑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나 이곳이 옛 절터임을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우) :  보물 제118호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좌상(좌) : 보물제120호

소재지 : 상주시 함창읍 증촌리258-3

연 대 ; 통일신라

(석조여래입상)

경상북도 상주의 용화사에 모셔져 있는 이 불상은 광배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높이 1.98m의 석불입상으로 마멸이 심해서 세부수법을 자세히 살펴 볼 수는 없다.
불상의 머리는 확실히 구별할 수 없지만 민머리처럼 보이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있다. 얼굴은 길고 풍만한 모습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지만 단정한 인상이다. 체구는 단정하며, 양 어깨에 걸쳐 있는 옷자락은 간결하게 표현되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 역시 많이 마모되어 가장자리에 새겨진 불꽃무늬만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단정한 체구에 다소 경직되고 현실적인 면이 강해진 특징을 가진 불상으로, 통일신라 후기 석불입상의 경향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석조여래좌상)

경상북도 상주군 용화사에 모셔져 있는 높이 1.68m의 석조불상이다.
거의 직사각형의 얼굴 형태를 하고 있으며, 어깨와 팔, 다리 등 신체 각 부분이 직선적이고 각이 진 모습이어서 전체적인 인상이 강인하며 경직된 느낌을 준다. 목에는 3줄의 삼도(三道)가 있고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신체에 밀착하여 얇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무릎에 대고 있으며 왼손에는 약 그릇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불을 형상화한 것이 분명하다. 광배(光背)는 남아 있지 않으며, 대좌는 8세기에 많이 나타나는 8각의 연꽃무늬 대좌로 안정감이 느껴진다.
수평으로 길게 뜬 눈, 미소없는 작은 입, 군살 붙은 턱 등의 세부표현은 고려시대 불상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임을 알려준다. 통일신라 중기의 풍만하고 균형있는 표현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이 형식화되고 경직화되어가는 특색을 잘 보여주는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이다.

 

 도리사석탑 : 보물 제470호

소재지 :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403 도리사 경내

연 대 ; 고려시대

도리사는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질 당시 전설에 나오는 아도(阿度)화상과 관련이 있는 절이다. 아도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서라벌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여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하였다 한다. 정확하게 언제 세워졌는지 알 수 없으나 신라 최초의 절이라고 전한다.
이 석탑은 대웅전 앞뜰에 있으며, 전체적으로 5개층을 이루고 있는데, 맨 아래층은 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基壇)으로 여겨진다. 위의 2개 층은 탑의 중심부분인 탑신부(塔身部)이다. 탑신부의 1층과 2층 몸돌은 작은 정사각형의 돌을 2∼3단으로 쌓아 마치 벽돌을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인다. 지붕돌 역시 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처럼 층단을 이루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각각 한면에 문틀을 돋을새김한 널돌이 끼워져 있어 문짝모양을 표현한 듯하다. 맨 위의 2개층은 탑의 머리장식받침인 노반(露盤)이 포개진 것인지, 아니면 위층만 노반이고 아래층은 탑신부로 보아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인 탑들과는 다른 특이한 형태로 몸돌과 지붕돌 윗부분의 층단구성이 모전석탑처럼 보인다. 이처럼 희귀한 모습을 한 탑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도리사 아도화상사적비 및 도리사불량답시주질비: 시도유형문화재 제291호

소재지 :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도리사 경내

 도리사 남쪽의 비탈진 소나무숲 속에 나란히 서 있는 2기의 비이다.
‘아도화상사적비’는 아도화상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비로, 자연 암석을 받침 삼아 그 윗면에 홈을 파서 비를 세우고,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은 앞면에 이무기를, 뒷면에 네 마리의 용을 조각하고 그 사이마다 구름·용을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 앞면에는 위쪽에 가로로 전서체로 된 비의 이름을 새겨두고, 그 아래에 세로로 비문을 적었다. 뒷면에는 ‘자운비(慈雲碑)’라는 글씨를 새겼으며, 그 끝에 건립연대를 밝혀두어 조선 효종 6년(1655)에 세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는 도리사에 논과 밭을 시주한 이의 이름과, 논밭의 규모를 적어놓은 비이다. 자연 암석을 받침 삼아 윗면에 홈을 파서 비를 꽂아두고, 머릿돌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머릿돌은 앞뒷면에 굵은 선으로 연꽃봉오리와 줄기를 조각하였고, 두 옆면에는 2중으로 된 원모양의 띠를 새겨 장식하였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모양을 한 머리장식이 우뚝 솟아있다. 앞뒷면에 세로로 새긴 비문은 앞면 첫줄에 비의 이름을 적은 후, 그 아래에 논밭을 시주한 자와 그 규모를 밝혀두었다. 비문 끝에 남긴 기록을 통하여 숙종 38년(1712)에 비를 세웠음을 알게 되었다.
17세기 중엽∼18세기 초에 세운 작품들로, 비문이 갖는 역사적 의미나 조각의 솜씨 등은 충분히 활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상주 용화사 삼층석탑

소재지 : 상주시 함창읍 증촌리 258-3

증촌리 석조여래입상 및 석조여래좌상을 모신 용화사 약사전 앞에 자리잡은 삼층석탑이다.이탑은 탑신부 두개의 지붕돌만

통일신라이후의 것으로 추정되고, 나머지 기단석 및 몸돌은 최근에 다듬은 석재로 보이며 그나마 두개의 지붕돌도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석탑 남쪽으로 지붕돌 및 몸돌이 있으나 이 탑과는 무관 한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