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지 오층석탑 : 보물 제53호
소재지 : 예천군 예천읍 남본리200-3
연 대 : 고려시대
고려 전기에 창건된 개심사에 있던 탑이었으나, 절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현재는 논 한가운데에 서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4면마다 둥근 테두리 선을 새기고 그 안에 머리는 짐승, 몸은 사람인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차례로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은 4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면을 나눈 다음 그 안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다. 팔부중상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의 모습을 새겨놓은 것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에 걸쳐 석탑의 기단에 많이 나타난다.
기단의 맨 윗돌은 그 윗면에 몸돌을 받치기 위한 연꽃무늬의 괴임돌을 놓았는데, 이것은 고려시대 석탑양식의 한 특징이다. 사리나 법경을 봉안하는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에는 문고리 모양을 조각하고 그 좌우에 인왕상(仁王像)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모두 4단씩의 받침을 깎아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어 탑 전체에 경쾌함을 실어 준다
예천용문사 대장전 : 보물 제145호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391
연 대 : 조선시대
용문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10년(870) 두운선사가 세운 절이다.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대장전을 지었다고 하는데 지은 시기는 알 수 없고 전하는 기록에 조선 현종 11년(1670)에 고쳤다고 하며, 그 후에도 여러차례 수리되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의 모서리 부분에는 용머리, 연꽃 봉오리와 같은 조각을 해 놓았고, 안쪽 부분에는 더욱 화려한 장식을 하여 당시의 정교한 조각과 장식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삼존불 뒤의 나무로 조각한 벽체는 건물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으며, 불단 양쪽 옆으로 불경을 보관하는 회전식 윤장대(輪藏臺)를 만들어 놓았다.
작은 규모의 건물로 뛰어난 조각 솜씨와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예천 청룡사 석조여래좌상 : 보물 제424호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선리520-2
연 대 : 통일신라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의 청룡사에 모셔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청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25호)과 나란히 법당 안에 모셔져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크고 나지막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표현되어 있다. 타원형의 얼굴에는 눈·코·입이 섬세하고 작게 새겨져 있으며 짧은 귀와 뚜렷한 목주름 또한 인상적이다. 어깨는 좁은 편이며 손과 발이 섬약하고 체구 또한 몹시 약화되어 긴장감이 빠진 듯하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에는 평행한 주름이 나타나고 가슴에는 띠매듭이 있는데, 이러한 형식은 통일신라 불상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끝이 뾰족한 타원형을 하고 있다.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는데,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몸광배에는 상상의 꽃이라는 보상화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몸광배의 주변에는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8각형인데 아래 부분에는 엎어진 모양의 연꽃무늬가, 윗부분에는 활짝 핀 모양의 연꽃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긴장감이 줄어든 부드러운 신체 표현, 대좌와 광배의 형식 등에서 볼 때 고려시대 조각으로 넘어가기 전인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예천 청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보물 제425호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선리520-2
연 대 : 고려시대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의 청룡사에 모셔져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청룡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24호)과 나란히 법당 안에 모셔져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크고 나지막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4각형에 가까워 넓고 평판적인 느낌을 주며, 코와 입이 매우 가깝게 붙어있는 독특한 인상을 준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넓적하고 평면적인 신체를 두껍게 감싸고 있다. 어깨에서부터 양 손에 걸쳐 흘러내린 평행의 옷주름은 부드럽기는 하나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가슴 부근에 있는 두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모습으로 비로자나불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손모양이다.
4각형의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나뉘어 진다. 상대의 4면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지고, 중대에는 각 면에 큼직한 눈모양의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하대는 앞부분이 파손되어 있으며, 옆면에 안상이 2개씩 배치되어 있다.
8∼ 9세기에 유행한 비로자나불좌상의 양식을 계승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움츠러들고 생동감이 없는 체구나 약화된 4각형의 대좌, 형식적인 옷주름 및 긴장감이 줄어든 신체 표현 등으로 볼 때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예천 동본동 삼층석탑 : 보물 제426호
소재지 :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474-4
연 대 : 통일신라
예천읍 한천(漢川) 북쪽의 석조여래입상(보물 제427호)앞에 자리하고 있는 탑이다. 탑과 불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절터였음이 분명하지만, 절 이름은 알 수 없다.
기단부(基壇部)는 윗층 기단 아래가 파묻혀 있어서, 원래 기단이 2층인지 1층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현재는 윗면에 경사진 돌이 있고, 기단의 가운데돌을 그 위로 얹고 있다. 가운데돌은 4장의 널돌로 짰는데 각 면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기고, 그 사이에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해 놓았다.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부처의 네 신을 뜻한다.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짜고, 각 층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2층이 5단, 3층이 4단인데 1층의 몸돌이 2 ·3층보다 두드러지게 큰 점이 독특하다. 지붕돌 추녀의 밑은 반듯한데 마무리부분에서 경쾌하게 치켜올려져 있으며, 빗물을 받는 낙수면의 경사도 완만하다.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한 돌로 되어 남아있지만, 훗날에 보충한 듯 하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몸돌의 줄어드는 비율과 지붕돌의 크기 등에 짜임새가 있는 아름다운 탑이다. 기단의 가운데돌에 새긴 사천왕상의 조각수법도 형식화되지 않은 멋을 보여준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가 줄어들고 있는 점이나 각 부분의 아래에 새긴 괴임돌이 간략해진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건립된 탑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 : 보물 제427호
소재지 :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474-4
연 대 : 통일신라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동본동 3층석탑과 함께 전해오는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으로 하나의 돌에 새겨진 전체 높이 3.46m의 거대한 석조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표현되었다. 원만한 얼굴에는 길다란 눈, 짧은 코, 적당한 입이 적절하게 표현되어 부드러운 곡선의 얼굴과 함께 자비롭고 온화한 미소를 실감나게 나타내고 있다. 큰 얼굴에 비하여 작아진 상체는 굵고 짧은 목과 좁은 어깨, 짧은 팔 등이 평판적인 가슴과 함께 움츠린 듯하여 다소 위축된 느낌을 준다. 오른팔은 옆으로 내려 몸에 붙인 채 옷자락을 살짝 잡고 있으며, 왼손은 앞으로 들어 새끼 손가락을 제외한 손가락을 안으로 굽히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허벅지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양 다리에서는 타원형의 주름을 만들면서 흐른다. 둔중하고 도식화된 이러한 형태의 옷주름 표현은 8세기 이후의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불상이 만들어진 연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양 다리에서 있는 긴 타원형의 옷주름, 부피감 없는 둔중한 신체, 그러면서도 아직 경직화되지는 않은 얼굴 모습 등을 고려할 때 통일신라 불상양식을 계승하면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으로 보인다.
예천권씨 초간종가별당 : 보물 제457호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166-3
연 대 : 조선시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초간 권문해(1534∼1591) 선생의 할아버지 권오상 선생이 지었다고 전하는 건물이다.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쪽에서 보면 오른쪽 3칸은 대청마루고 왼쪽 1칸은 온돌방인데 온돌방은 다시 2개로 나뉘어 있다. 대청 앞면은 문짝 없이 열려 있지만 옆면과 뒷면은 2짝 널문을 달았으며 집 주위로 난간을 돌려 누(樓)집과 같은 모양으로 꾸몄다.
겉모습은 대체로 소박한 구조를 보이고 있으나 안쪽은 천장 부분에 설치한 여러 재료들을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호화롭게 꾸미고 있다. 별당 뒤 서고에는 권문해 선생이 쓴『대동운부군옥(大東韻部群玉)』의 판목 677매와 14대째 전하는 옥피리,『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전질 120권을 보존하고 있다.
일반 주택건축으로는 보기 드물게 건물 안쪽을 장식하여 꾸민 수법이 뛰어난 조선시대 별당 건축이다.
예천용문사 윤장대 : 보물 제684호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391
연 대 : 고려시대
용문사 대장전 안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던 도구이다.
마루 밑에 회전축의 기초를 놓고 윤장대를 올려놓았으며, 지붕 끝을 건물 천장에 연결하였다. 불단(佛壇)을 중심으로 좌우에 1기씩 놓여있는데 화려한 팔각정자 형태이다. 아래부분은 팽이모양으로 뾰족하게 깎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고, 난간을 두른 받침을 올린 후 8각의 집모양을 얹었다. 8각의 집모양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각 면마다 8개의 문을 달았다. 문은 좌우로 구분되어 4개의 문에는 꽃무늬 창살이 다른 4개의 문에는 빗살무늬 창살이 정교하게 꾸며져있다. 문을 열면 8면에 서가처럼 단이 만들어져 경전을 꺼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보존이 잘 되어있고 8각형 모양의 특이한 구조수법이 돋보이는 국내 유일의 자료로, 경전의 보관처인 동시에 신앙의 대상이 되는 귀한 불교 공예품이다.대장전을 창건할 당시 함께 제작된 것인지 조선 현종 11년(1670) 대장전을 새단장하면서 만들어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예천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목각탱 : 보물 제989호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391
연 대 : 조선시대
숙종 10년(1684)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목각후불탱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기본구조는 상하가 긴 사각형이지만 좌우로 구름무늬 광선을 표현한 둥근 모양의 조각을 덧붙여 장엄하게 장식하고 있다.
중앙에 모셔진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여 사바세계를 굽어 살피듯 평담하게 묘사되었다. 두 손은 모두 무릎 위에 올렸는데 왼손은 손가락을 위로, 오른손은 아래로 하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어 아미타불의 손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두꺼운 편이며, 간략한 몇 개의 선으로 신체와 옷을 구분하여 주름이 없다면 신체의 근육으로 여길 정도다.
본존불 이외의 상(像)들은 상·중·하 3행으로 배치시키고 있다. 아랫줄에는 사천왕상이 본존의 대좌(臺座) 좌우로 2구씩 일렬로 서 있다. 가운데줄과 윗줄에는 각기 좌우 2보살씩 8대 보살이 배치되고, 윗줄의 보살 좌우에는 다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모습의 2대 제자를 배치하여 구도의 미를 살리고 있다. 보살은 본존불과 동일한 기법을 보여주며, 불과 보살상 사이의 공간에는 구름, 광선 등을 배치했다. 목각탱의 앞면에는 삼존목불좌상이 놓여져 있는데 본존상의 경우 머리에는 반달 모양이 표현되었고, 신체는 둥글며 옷은 두꺼워 신체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다. 목각탱과 같은 기법으로 동일한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임에는 확실하지만, 목각탱의 상에 비해 가슴표현이 유기적이며 조각기법에서 조각가의 정성을 엿볼 수 있다.
하단에 표현된 조성기(造成記)에 의하여 숙종대의 작품이 분명하며, 17세기 후반 조각양식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다.
예천권씨 초간종택 : 중요민속자료제201호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166-3
연 대 : 조선시대
낮은 뒷동산을 배경삼아 경사진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은 조선 전기의 기와집이다. 현 소유자의 13대조 때 지은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건축이다.
오른쪽 앞으로 돌출한 사랑채(보물 제457호)는 높은 기단 위에 짓고 주위에 난간을 돌려 누집모양으로 꾸몄다. 왼쪽으로 후퇴시켜 'ㄱ'자로 지은 안채도 2단으로 높이 쌓은 기단 위에 지었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앞에 여러단의 계단을 설치하여 건물 전체가 높고 웅장해 보인다. 안채의 오른쪽으로는 안사랑채가 자리잡고 있으며, 안사랑채의 마루쪽으로는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사당은 안채 오른쪽 뒷편에 있다. 사당의 문틀 중앙에 수직으로 중간설주가 서 있는데, 그 단면이 T자형으로 문받이를 겸하고 있으며 윗쪽으로 밀어올려서 떼어낼 수도 있게 되어있다. 출입문에 중간설주가 있는 예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붙였다 떼었다 하는 것으로는 유일하다.
보존상태가 양호한 조선 전기의 우수한 주택으로, 조선 시대 주택의 구조와 양식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지정 당시 명칭은 '예천권씨종택(醴泉權氏宗宅)'이었으나, 초간 권문해(權文海)는 예천권씨 시조의 5세손 중 제일 끝집인 오상공(五常公)의 장손임에 따라 '예천권씨종택'으로 유지할 경우 대외적으로 예천권씨 계보상 제일 큰집의 종택으로 오인될 수 있어, 예천권씨 종친회의 명칭변경 요청과 소유자의 동의로 명칭을 변경하고자 함.
예천 초간정 : 문화재자료 제143호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350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1534∼1591) 가 세운 것으로 심신을 수양하던 정자이다.
권문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백과사전류인 『대동운부군옥』 20권을 지어 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남겨 놓았다.
정자는 조선 선조 15년(1582)에 처음 지었고, 선조 25년(1592) 일어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광해군 4년(1612)에 고쳐 지었지만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선생의 원고 등을 보관하기 위해 고종 7년(1870) 후손들이 기와집으로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 왼쪽 2칸은 온돌방을 배치하고 나머지 4칸은 대청마루로 4면에 난간을 설치해 두었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양란을 겪으면서 초간정사의 현판이 정자 앞 늪에 파묻혀 있다는 전설이 전해졌는데, 신기하게도 늪에서 오색무지개가 영롱하여 현판을 잃고 근심하던 종손이 파보았더니 현판이 나왔다고 한다.
초간정은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예천용문사 자운루 : 문화재자료 제169호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391
용문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10년(870)에 두운이 세운 절이다. 두운이 용문산에 이르렀을 때 바위 위에서 용이 영접하였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자운루는 2층 누각집으로 고려 의종 20년(1166)에 자엄대사가 세웠으며, 조선 명종 16년(1561) 고쳐 짓고, 광해군 13년(1621)에도 고쳐 지었다. 그 뒤, 1979년에 보수하여 오늘이 이르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짠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안쪽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이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곳에서 짚신을 만들어 조달한 신방의 기능을 수행한 호국의 장소이기도 하다. 건축 양식으로 보아 조선 중·후기의 기법을 지니고 있으며, 불교 행사가 있을 때 법 공양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예천 상금곡 사괴당고택 : 문화재자료 제337호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430
상금곡리는 원주 변씨와 함양 박씨가 모여 사는 마을이다.
이 집은 첨추공파로 이 마을에 처음으로 와서 자리를 잡은 변희리(1435∼1505)의 증손자인 사괴당 응녕(1518∼1586)이 터를 잡았다고 한다.
건물 배치는 튼 ㅁ자형으로 정침과 양날개가 ㄷ자형을 이루면서 앞쪽에 일자형 문간채가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 날개 동쪽에는 2층의 대문채가 있다. 집 구성은 정침과 오른쪽 날개에 걸쳐 세대별 구분이 명확하고, 수장공간의 구성이 뛰어나다. 또한 구조의 접합 기법과 창호 수법에서 세련된 법식을 지니고 있다.
건물의 수법으로 보아 지은 시대는 18세기 전·후반으로 추정하며 조선 후기 주택 변천사를 볼 수 있는 가치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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