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보살좌상 : 보물 제296호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1438
연 대 : 고려시대
청암사 수도암 약광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54m의 고려시대 석불좌상이다.
머리에 원통형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처럼 보이지만, 광배와 대좌가 있고 신체 각 부분의 표현으로 보아 여래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단아한 모습인데 마모가 심해 세부수법을 자세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양 어깨에 걸쳐져 있는 옷의 주름은 도식적이고, 손모양은 두 손을 무릎 위에 나란히 모아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는 연꽃무늬·덩쿨무늬·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4각형으로 윗부분에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을, 아랫부분에는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을 조각하였다.
도식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형식적인 광배와 대좌의 표현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생각된다.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 : 보물 제297호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1438
연 대 : 통일신라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쪽에 서 있는 쌍탑으로, 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설이 전해온다. 앞 뜰이 좁아서 탑과 법당과의 거리가 가깝다.
동탑은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얕게 새겼다. 탑신부에서는 1층 몸돌이 위가 좁고 밑이 넓은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각 면에는 4각형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두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2·3층의 몸돌에는 각 모서리 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받침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크게 줄었으나 3층 몸돌은 2층과 비슷하다. 1층 몸돌의 각 모서리에는 기둥만 새겨져 있고, 그 사이에 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동탑보다 얇고 넓으며 밑받침은 5단이다.
두 탑은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며, 곳곳에서 특이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동탑은 1층 몸돌의 위가 좁고 감실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고 서탑은 지붕돌 밑의 간격과 지붕돌이 넓다는 것이 특징이다.
동 삼층석탑
서 삼층석탑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보물 제307호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1438
연 대 : 통일신라
청암사 수도암에 모셔진 높이 2.51m의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으로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작지만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네모나며 풍만하고, 긴 눈·작은 입·평평한 콧잔등에서 위엄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느슨하고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단정하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거구의 불상이면서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특이한 손모양과 함께 당시 시대양식의 반영인 것 같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쪽은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으로 8각형을 이루고 있다. 맨 위에는 반원형에 가까운 연꽃이 2줄로 교차되어 있고, 앞면에 3마리의 사자상과 용머리 같은 것이 새겨져 있어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정제되고 균형잡힌 모습을 나타내는데, 위축되고 긴장감이 감소하며 탄력이 줄어든 점으로 볼 때 신라말에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석불좌상은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갖추고 있는데, 단아(端雅)한 얼굴에 머리에는 원통관(圓筒冠)을 쓰고 있으며 두 어깨는 좁아진 편이다. 통견(通肩)의 옷주름은 도식적(圖式的)이며 두 손은 법계정인(法界定印)을 취하면서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광배는 거신광(擧身光)으로 연화문(蓮華紋), 당초문(唐草紋), 화염문(火焰紋) 등을 새겼고, 대좌는 상대(上臺)는 앙련(仰蓮)을, 중대(中臺)는 안상(眼象), 하대(下臺)는 복련(覆蓮)을 조각한 방형대좌(方形臺座)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 초기인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문경 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 : 보물 제606호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면 북암길89
연 대 : 통일신라
직지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2기의 석탑으로, 원래 경북 문경의 도천사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두 탑 모두 각 부분의 양식이 같아서 1단의 기단(基壇)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다.
여러 장의 넓적한 돌로 짜여진 기단은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뚜렷한 기둥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얇고 평평한 지붕돌의 밑면 받침으로 1·2층은 5단, 3층은 4단을 두었고,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에 올려진 거대한 모습의 머리장식은 1976년 탑을 옮겨 세울 때 새로 만들어 장식해 놓은 것이다.
탑신의 1층 몸돌 높이가 지나치게 높긴 하나, 전체적으로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기단이 1단이고, 지붕돌의 들린 정도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동 삼층석탑
서 삼층석탑
문경 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 : 보물 제607호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면 북암길89
연 대 : 통일신라
직지사 비로전 앞에 세워져 있는 3층 석탑이다. 1974년 대웅전 앞 3층석탑 2기(보물 제606호 문경 도천사지 동ㆍ서 삼층석탑)와 함께 경상북도 문경 웅창마을 북방 금강가의 옛 도천사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1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다.
바닥돌은 넓적하게 짜여져 있으며, 그 위로 여러 장의 석재를 조성한 2단의 높직한 괴임을 두어 기단을 받치고 있다. 기단은 몇 개의 널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이루어져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뚜렷한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다. 지붕돌은 얇고 평평한 편으로 밑면의 받침을 5단씩 두었고, 날카롭게 들린 네 귀퉁이로 인해 경쾌함이 느껴진다.
탑신의 1층 몸돌이 2·3층에 비해 매우 높으나, 전체적으로 비례가 적절한 세련된 모습으로, 9세기 통일신라 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전) 구미 강락사지 삼층석탑 : 보물 제1186호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면 북암길89
연 대 : 통일신라
강락사라고 전해지는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탑으로, 1968년 경북 선산군 군청 앞뜰에 옮겨 복원하였고, 1980년 10월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을 탑신(塔身)을 세우고 머리장식을 얹은 구조이다.
기단은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고, 면의 중앙에도 기둥 하나씩을 조각해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각기 한 돌로 짜고,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수가 각 층 모두 5단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하였고, 빗물을 받는 낙수면은 반듯하다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1980년 탑을 옮겨 세울 때, 같은 시기의 석탑을 모방하여 복원해 놓은 것이다.
지붕돌의 치켜 오른 정도나, 밑면의 받침수, 각 부의 세부적인 양식으로 보아 9세기경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 보인다.
김천 직지사 대웅전 : 보물 제1576호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면 북암길89 연 대 : 조선시대 김천 직지사 대웅전은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까지는 좌측의 계곡을 끼고 지형에 맞추어 휘어져 올라온 북쪽에 위치하며, 萬歲樓에서 대웅전에 이르기까지는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禪堂이 위치해 있으며, 대웅전 앞 뜰에는 2개의 삼층탑이 놓여 있는 2탑식 중정형 가람배치를 가진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김천 직지사 대웅전 가구의 구성 및 부재의 표현기법은 조선후기의 건축적 특징이 잘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직후 재건된 불전들의 경향을 보이며, 아름답고 뛰어난 기법을 보여주는 내·외부 많은 벽화와 불단이 남아 있는 등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1917년에 촬영된 동 석탑(石塔)의 사진상에는 완전한 상태였으나 그 후 일제(日帝)말 도굴범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전한다.
단층 기단위에 3층 탑신을 건조하고 그위에 상륜을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기단부는 여러개의 장대석(長大石)으로 결구(結構)한 지대석 상면에 각형(角形) 2단의 괴임대를 마련하고 기단 면석을 받고 있는데 기단 각 면에는 양우주와 1탱주를 모각하였다.
갑석은 하면에 정연한 부연을 갖추고 있으며 상면에는 원호(圓弧)와 각형(角形)의 괴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은 탑신과 옥개석이 각기 1석(石)씩으로 조성되었는데 각 층의 탑신석에는 양우주(兩隅柱)가 정연하게 모각되었다.
각층 옥개석은 하면에 옥개받침이 5단씩 정제된 층단을 보이고 있으며 낙수면은 평박하여 합각(合角)이 예리하다. 그리고 상면의 괴임도 각형(角形) 2단으로 정연하다.
상륜부는 후보물(後補物)이나 기왕의 국가지정문화재의 석탑 상륜부를 모본으로 하여 다른 같은 시대의 석탑 상륜부를 검토, 종합하여 조성한 것이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보아 9세기경의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석탑인데 단층기단과 탑신부의 구성형식은 9세기 신라석탑의 특징을 잘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 석탑의 전체높이는 9m이며, 3층 옥개석까지의 높이는 5.1m이다.
'문화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진지역 문화재 탐방 (0) | 2014.03.24 |
---|---|
서산지역 문화재 탐방 (0) | 2014.03.24 |
보물 제68호 외 문화재 탐방 (0) | 2013.02.23 |
보물제155호 장흥 보림사 동승탑외 문화재 탐방 (0) | 2013.02.18 |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외 문화재탐방 (0) | 2013.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