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경북영양에서...

소솔바람 2010. 11. 15. 12:44

"아이고!! 답답데이!영양고추를 몰래? 영양고추!... 한 입 비물어먹으면 아싹하고...." 텔레비젼 광고에 등장한 영양에 어느 할아버지의 구수한 경상도 안동 사투리가 정겨운 이유는  굳이 이야기를 안해도 알 만한사람은 다알터이고......

11월 둘째주 토요일...늦은 가을 영양으로 떠난다. 진보에서 영덕쪽으로 가다가 삼거리, 국도31호선을 타고가면 영양가는 삼거리

부터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을 따라서 "문향의 고장" 경상북도 영양땅을 밟아선다..청록파 시인의 한사람 "조지훈선생.그리고

시인 오일도선생, 현재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계시는 소설가 이문열 선생 등.. 많은 문인을 배출한 "영양"으로 문화재 여행을 떠나는길이다.. 먼저 봉감모전오층석탑이 있는 입암면 산해동 반변천 강가로 향한다..저쪽 먼산에는 금방이라도,바람불면 우수수 떨어질것 같은 낙엽송의 노란빛깔 나뭇잎이 푸른소나무의 색깔과 대비되어 눈이 부시다........

 

봉감모전오층석탑 : 국보 제187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391-6

연 대 : 통일신라

 

경북 영양군 산해동 강가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이 마을을 ‘봉감(鳳甘)’이라고 부르기도 하여 ‘봉감탑’이라 이름붙여졌다. 석탑 주변의 논밭에 기와조각과 청자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어, 이 일대가 절터였음을 알수 있다.
탑은 벽돌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흙과 돌을 섞어 낮게 바닥을 깔고, 10여 개의 길고 큰 돌을 짜서 쌓았다. 그 위의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 모두 벽돌 모양의 돌로 쌓았다.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두었는데, 감실 양쪽에 둔 2개의 화강암 기둥과 이맛돌의 섬세한 조각이 장식적인 효과를 더해주고 있다. 2층 이상의 몸돌은 독특하게도 중간정도의 높이마다 돌을 돌출되게 내밀어 띠를 이루고 있다. 지붕돌은 전탑의 양식에 따라 아래윗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고 있으며, 처마의 너비는 좁아져 있다.
1단 기단의 모습과 돌을 다듬은 솜씨, 감실의 장식 등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균형과 정연한 축조방식을 갖추고 있으며,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우수한 작품이다.

 

봉감모전오층석탑과 주변풍경

 

영양 현일동삼층석탑 : 보물 제610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현1리398-5

연 대 : 통일신라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한 면에 3구씩 새겼다. 위층 기단은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고, 기둥으로 나누어진 각 면마다 8부중상(八部衆像)을 조각해 두었다. 8부중상은 통일신라 중기 이후 석탑에 등장하는데, 단순히 탑의 장식에만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탑신의 1층 몸돌에는 각 면마다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각 층의 지붕돌 밑면에는 물을 뺄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고,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이 탑은 전체적인 구성이나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영양 화천동삼층석탑 : 보물 제609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화천리835

연 대 : 통일신라

 

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의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한 면에 3구씩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는데, 손에는 각각 무기를 들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위층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조각으로 나뉘어진 8곳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조성된 탑신은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조각을 새겼다. 1층 몸돌에는 4면에 사천왕상(四天王像) 1구씩을 뚜렷이 드러나도록 조각했는데,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이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4단씩으로 얇고, 평평한 모습이며 처마밑은 수평을 이루고 있다.
무너지기 직전에 있었던 탑을 1974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나 1층과 3층의 몸돌이 많이 손상되어 보는 이들이 안타깝다. 기단부에서 탑신에 이르기까지 표면에 많은 조각들이 있어 매우 화려하고 장식적인 석탑으로, 9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영양 현동당간지주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5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현리404

연 대 : 통일신라

 

당간지주란 사찰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절에 행사가 있을 때에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게 되는데 그 깃대를 당간이라 하고, 깃대를 좌우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드물게 당간이 남아있는 예가 있으나, 대개 두 지주만이 남아있다. 한쪽 기둥만 남은 이 당간지주는 어느 절에 속해 있던 것인지는 전하지 않고 있다.
기둥은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고 있다. 기둥 바깥면에 세로로 선을 새겨 장식하였고, 기둥 꼭대기는 한단의 굴절을 두어 둥글게 다듬었다. 당간을 꽂아두는 받침돌은 기둥 안쪽면에 붙어 있다. 기둥의 안쪽면 맨윗부분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을 깊게 파 놓았다.
조각이 간결하며 굵고 묵직하여 안정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것이다

 

 

영양 현이동모전오층석탑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현리462-1

연 대 :

 

영양읍 현2리에 서 있는 5층 석탑으로,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렸다. 전탑(塼塔: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분류되며, 나즈막한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탑신의 1층 몸돌 동쪽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설치하였고, 그 입구 양 기둥에는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탑신의 2층까지만 남아 있던 것을 새로이 복원해 놓은 것으로,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차례로 얹혀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흑회색의 점판암 재질과 둔탁한 겉모습이 어우러져 육중한 느낌을 자아낸다

 

영양 삼구정(英陽 三龜亭)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2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대천리945

연 대 :

 

용계 오흡(1576∼1641)이 지은 정자로 병자호란 때 인조가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자, 이를 분개해 대천리 반월산 아래에 초가정자를 짓고 살았다. 그 뒤 그가 죽자 후손들이 기와집으로 다시 고쳤다.
정자 앞에는 세 개의 바위가 나란히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집을 업은 거북이 같다해서 정자 이름을 삼구정이라 지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조선 중기의 건물로 다소 수리가 있었으나 옛 품격을 느낄 수 있으며, 영양군내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 중의 하나로 주변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영양 월담헌 및 사월종택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2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하원리205-1

연 대 :

 

사월 조임(趙任)이 선조 35년(1602) 30세 에 지은 집으로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이 앞으로 흐르고 선유굴과 옥선대·비파담을 바라보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이 집은 日자형에 가까운 배치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일부 건물과 사당이 없는 尸자형 배치를 보이고 있다. ㄷ자형의 안채와 ㄱ자형의 월담헌이 연결되어 평면구성이 전형적인 안동지방 ㅁ자형 집의 유형을 나타낸다.
안채는 앞면 4칸·옆면 5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사랑채인 월담헌은 앞면 3칸·옆면 2칸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누마루를 시설하여 건물을 한층 높였는데, 이것은 사대부의 집에 흔히 적용되는 수법이다.
사방 벽에는 「월담헌기」, 「축천당기」 등 당시의 명사들이 읊은 시가 많이 있으며, 월담헌이라는 이름은 주자의 「무이구곡가」에서 지었다고 한다.
자연지형을 이용하고, 누각인 사랑채를 주건물로 하여 주택을 사각형으로 배치시킨 것은 매우 희귀한 예이다. 또한 이 집이 자리잡은 방향과 땅의 형세는 궁중건물이 아니고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명당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영양 삼지동모전석탑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3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삼지리 산17

연 대 :

 

절벽을 이룬 산 중턱의 튀어나온 바윗돌 위에 서 있는 석탑으로,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모전 석탑이다.
탑은 큰 바위를 기단(基壇)삼아 그 위로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모습이며, 원래 3층탑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2층까지만 남아있다. 탑신의 1층 몸돌 앞면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안에서 신라 금동불상 4구가 나왔다고 하나 현재 전하고 있지 않다. 지붕돌은 아래·윗면이 모두 층단을 이루고 있다.
연대암 부근에 있었던 영혈사에 세워 두었던 탑으로 추정된다. 영혈사는 신라 삼국통일 이전에 창건된 사찰로 이 탑 또한 그 당시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1998년 석탑 해체 보수시 석재 사리함과 사리 1과가 출토되었다

 

영양사정(英陽 思亭)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7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현2리709-2

연 대 :

 

일제강점기 때 영양지역에서 막대한 부(富)를 축척하여 자선사업을 크게 베풀었던 대은(大隱) 권영성(1881~1959) 이 1934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권영성은 영양향교,김천중학교,대구의학전문학교,영양초.중.고등학교,화천초등학교,대구농림학교 등에 긱종 육영사업을 베풀었으며, 수재와 극빈구제를 위해서는 양곡을 기부하였으므로 그를 기리는 공덕비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정자는 정면3칸 측면1칸 반 규모의 전통적인 누정형태인데, 정자로 오르내리는 계단이나 담장등에는 붉은벽돌,인조석 씻어내기,타일 등 근대적인 재료와 수법을 사용 하였으므로 전통양식에 근대적인 요소가 첨가된 매우 독특한 모슴을 보여주고 있다.

 

 

 

영양 학초정 및 정침 :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4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591-2

연 대 :

 

뒤에는 갓등산이 둘러있고 앞에는 반변천이 흐르는 아늑한 자리에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건물이다. 이 정자와 살림집은 조선 중기 효종 때 삼수당 조규(1630∼1679) 선생이 지은 것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정자가 놓이고 그 앞쪽에 살림집이 있다. 학초정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정자로 왼쪽은 2칸의 온돌방을 두었고 가운데와 오른쪽에는 4칸의 대청마루를 두었다. 건물의 4면에는 돌출한 좁은 마루를 돌렸으며, 대청은 누마루로 높이 올렸다. 세부 건축양식은 일반적인 조선 중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살림집은 ㅁ자형을 기본으로 하면서, 전면이 양쪽으로 돌출한 형태로 영남내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정침의 오른쪽에는 뒤쪽에 윗방 1칸·안방 2칸이 마당쪽으로 놓였고, 그 앞에 마당 2칸이 설치되어 앞채에 닿았다. 중문간의 오른쪽에는 고방이 있고 그 옆에 통로가 설치되어 부엌과 안마당을 직접 연결시켰다.
사당이 설치된 것을 제외하고는 이 지방 상류계층의 주택모습이 잘 남아있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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