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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갑사 문화재외

소솔바람 2011. 7. 25. 11:07

도 갑 사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위치한 도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대흥사의 말사로서 통일신라말 880년 (헌강왕6)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현재, 고려시대의 기록은 자료유실로 알려진것이 없고 조선 이후의 사원의 중창은 1456년(세조2)에 수미왕사에 의해서 였다. 당시, 건물규모가 966칸에 달하는 대가람을 이루었고 소속된 암자가 12곳,도갑사에 머무르며 수행하는 승려가 780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 해 오다가 정유재란 및 한국전쟁 등으로 많은 문화재가 소실 되었다.

 

도갑사 일주문

 

영암 도갑사 해탈문 : 국보 제50호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8

연   대 : 조선시대

도갑사는 월출산에 있는 절로,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하며 고려 후기에 크게 번성했다고 전한다. 원래 이곳은 문수사라는 절이 있던 터로 도선국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인데, 도선이 자라 중국을 다녀온 뒤 이 문수사터에 도갑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수미·신미 두 스님이 조선 성종 4년(1473)에 다시 지었고,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버린 것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해탈문은 모든 번뇌를 벗어버린다는 뜻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절의 입구에 서 있다. 좌우 1칸에는 절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서 있고,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위쪽에는 도갑사의 정문임을 알리는 ‘월출산도갑사(月出山道岬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반대편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은 우리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산문(山門)건축으로, 춘천 청평사 회전문(보물 제164호)과 비교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 국보 제144호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산26-8

연   대 : 통일신라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구정봉의 서북쪽 암벽을 깊게 파서 불상이 들어 앉을 자리를 만들고, 그 안에 높이 8.6m의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 불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는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는 모습을 한 높이 86㎝의 동자상을 조각하였다.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큰 얼굴은 근엄하고 박력있는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옷주름은 가는 선으로 새겼는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 아래까지 흘러 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한 옷주름과 양감있는 신체의 표현에서 탄력성과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당당한 신체에 비하여 팔은 가늘게 표현하고 있으며,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따로 조각하였으며, 그 안에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새겨 넣고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전반적으로 안정감과 장중한 인상을 주며,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기법과 더불어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반면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커진 얼굴과 너무 작게 표현된 팔 등에서 불균형한 비례와 경직된 표현이 엿보여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영암 도갑사 석조여래좌상 : 보물 제89호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4

연   대 : 고려시대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의 미륵전에 모셔져 있는 있는 석조불상이다. 이 불상은 몸체와 광배(光背)가 하나의 돌로 조각되어 있어서 마치 바위에 직접 불상을 새긴 마애불과 같은 기법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를 큼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얼굴은 타원형이며 도드라진 눈덩이,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은 강건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다. 넓은 어깨, 평평한 가슴, 단순한 몸의 굴곡 등은 생동감이 없는 경직된 모습이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왼쪽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걸쳐 입고 있으며 몇가닥의 옷주름이 투박하게 표현되었다.
갸름한 타원형 광배의 가운데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꼭지와 머리 양 옆에 각각 작은 부처가 표현되었다. 광배에 새겨진 조각은 대체적으로 생략이 강하다.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 놓은 대좌(臺座)는 밋밋한 4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본래는 연꽃무늬를 새긴 8각형의 대좌였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다소 경직되고 형식화된 수법을 보여주지만 얼굴표정에서 훈훈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 불상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투박하고 생략이 강한 고려적 요소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영암 도갑사 목조문수.보현동자상 : 보물 제1134호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연   대 : 조선시대

 신라말 도선이 창건한 도갑사 해탈문 안에 있는 목조동자상이다.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해탈문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동자상은 뒷쪽 좌우칸에 모셔져 있다.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두 동자상은 총 높이가 약 1.8m가량이고, 앉은 높이가 1.1m 안팎으로 크기도 비슷하고 조각기법도 동일하다. 다리를 앞쪽으로 나란히 모아서 사자, 코끼리 등에 걸터앉은 두 동자상은 동물상과 따로 만들어 결합하였으며, 두 손도 따로 만들어 끼웠다. 현재의 손도 후대에 다시 만들어 끼운 것으로 생각된다. 두 동자상의 머리를 묶은 모양새는 매우 화려하며, 이목구비가 원만하여 동자의 천진스런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점에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과 실천의 상징인 보현보살의 화신으로 추정되며 사자와 코끼리를 탄 동자상이라는 드문 예 가운데 목조상으로서는 유일한 작품이다.
1960년 해탈문을 해체 복원할 때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해탈문이 1473년에 건립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이곳에 모신 동자상도 문이 건립될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석탑 : 보물 제1283호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산26-8

연   대 : 고려시대

용암사는 기암괴석이 많아 남쪽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의 구정봉 아래 있다. 300평에 가까운 부지에 수많은 기와조각들과 주춧돌이 남아 있어 건물이 있던 자리임을 알게 한다. 1955년 ‘용암사’라고 쓰인 기와가 출토되어『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용암사’임을 알게 되었으나 구체적인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중심 건물터 남동쪽에 있는 이 탑은 일명 ‘탑봉’이라 불리는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두었으며,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둘레에 구역을 조성한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두었다. 기단의 윗면에는 높직한 괴임 2단을 별도의 돌로 끼워 두었는데, 이 가운데 1매가 없어져 1966년 복원공사를 하면서 새로이 보충해 놓았다. 탑신의 1층 몸돌은 2매의 돌로 구성하였고, 2·3층 몸돌은 각각 1매로 하였으며, 각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1·2층은 2매로, 3층은 1매로 구성하였으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 역시 1층은 5단, 2층은 4단, 3층은 3단을 두어 한 단씩 줄어들고 있다. 윗면 모서리는 석탑에서는 흔치 않게 두툼하게 표현하였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1966년 무너진 석탑을 다시 세울 때, 아래층 기단에서 백자사리호 1점, 금동보살좌상 1점, 청자대접 1점, 사리 32과, 철편 11점 등이 발견되었다.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비 : 보물 제1395호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산56-2

연   대 : 조선시대

도갑사 도선·수미비는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이首)를 구비한 석비로 도갑사의 부도전(浮屠田) 부근에 건립된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수미왕사의 행적을 기록한 높이 517㎝ 규모의 석비이다.
석비가 자리한 탑구(塔區)는 수매의 판석으로 조성했는데, 전면의 구도는 방형이지만, 뒷면은 귀부의 형상과 같이 ‘ㅅ’자형으로 조성해 전체적으로는 6각형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귀부의 머리는 오른쪽으로 약간 튼 형태인데 입에는 상·하 8개의 이빨로 여의주를 꽉 물고 있는 형상이다. 코는 큼직하며, 반구형의 양 눈은 부리부리하게 표현하였다. 등에는 전형적인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斜線紋)으로 정연하게 음각하였다. 4발 중 앞발은 5조, 뒷발은 3조의 발가락이 표현되었으며, 꼬리는 살짝 돌려 왼쪽 발의 허벅다리에 닿았다. 상면에는 비좌(碑座)로부터 중단에 이르기까지 넓게 방형의 얕은 받침이 표현되었다. 각 면 중앙의 내곡된 상면에는 화문(花紋)이 조식되어 있다.
비신은 귀부와 이수와는 달리 대리석으로 조성했다. 상면에는 전서로 「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이라 썼으며, 비제(碑題)는 횡서로 「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병서」라 음각했다. 비문에 의하면 본래 이 곳에 있던 도선국사의 비가 훼손되어 다시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비문은 전면에 2개, 후면에 1개 등 모두 3개로 다른 석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비문의 찬자가 각각 이경석(李景奭), 이수인(李壽仁), 정두경(鄭斗卿)인데 반해 연대는 모두 「숭정(崇禎) 병자(丙子) 사월(四月) 일(日) 입(立)」이라 기록되어 있어 1636년(조선 인조 14)에 건립이 시작되어 1653년(조선 효종 4)에 준공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양 측면에는 운룡문(雲龍紋)이 가득 양각되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마치 살아 있는 쌍룡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수 역시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하단에는 28판의 앙련(仰蓮)이 조각되었으며, 상면에는 운문 위에 2마리의 용이 각각 이수의 양끝을 물고 있는 형상을 지니고 있다.
이 석비는 1653년(조선 효종 4)에 건립된 것으로 우선 규모 면에서 다른 비석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각부의 양식에서 귀부는 다른 예와는 달리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으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비신 역시 조성재료가 대리석이라는 점 외에도 양 측면에 조각된 운룡문은 매우 힘찬 기상과 율동감을 지니고 있어 당대 최고 수준의 작풍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석비의 건립기간이 18년임을 알려주고 있어 이 방면 기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나아가 대부분의 석비가 1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 비해 도선과 수미선사를 표방하고 있어 이 역시 독특한 예라 생각된다. 한편 건립연대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비문이 각각 독립된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찬자는 물론 쓴 사람과 각자한 사람이 모두 다른 것은 비문의 내용을 볼 때 석비를 다시 세우기로 계획하고 3년의 모금활동과 건립기간 18년을 포함한 21년간에 걸친 건립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2번째 비문에는 앞선 비문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으며, 석재의 채취로부터 이동과정이 기록되어 있으며, 3번째 비문에서는 음기를 청탁받은 사실이 기록된 점으로 보아 석비의 건립과정에서 3개의 비문에 대한 준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 : 보물 제1433호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연   대 : 고려시대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은 하층기단을 잃은 채 단층기단 위 5층 탑신부 및 노반석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95년 이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의한 도갑사경내 발굴조사중 하층기단부가 발견되어 2002년 2월 현 대웅전 앞에 2중기단의 5층석탑으로 복원되었다.(현재 높이 5.45m)
조각 및 구조수법 등의 특징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각 부재도 온전하게 잘 남아있으며 전체적으로 균제된 체감율과 안정된 조형미가 돋보이는 석탑이다.

도갑사 석조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0호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6

연  대 :

도갑사 안에 놓여 있는 것으로, 물을 담아두거나 곡물을 씻는데 쓰였던 일종의 돌그릇이다.
길쭉하고 네모난 돌의 안을 파내고, 각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었는데, 아랫부분을 둥글게 반원모양으로 깎아 놓아 옆에서 보면 작은 통나무배를 보고 있는 듯하다. 안쪽 밑바닥에는 물을 뺄 때 쓰이는 작은 배수구멍이 뚫려 있다.
표면에 기록이 남아 있어 조선 숙종 8년(1682)에 만든 것임을 알게 되었다.

도갑사 수미왕사비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6

연  대
도갑사 경내에 서 있는 비로, 영암 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수미는 조선시대 승려로 13세에 출가하였고, 불교를 숭상했던 세조 임금이 그 스승(왕사)으로 모셨던 인물이다.
비는 거북모양의 받침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형식적으로 조각된 거북받침은 머리가 용의 머리처럼 바뀌었으나, 목이 짧다. 앞발과 뒷발의 발톱이 다섯개씩이다. 거북 등에는 벌집모양의 육각형이 매우 두껍게 조각되어 있다. 비몸 위에 놓인 머릿돌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구름 위로 중간과 양 모서리에 다투듯 뒤엉킨 두마리의 용을 새겨놓았다.
선조 14년(1581)에 비가 넘어져 새로 세운 것으로, 인조 7년(1629)에 시작하여 인조 11년(1633)에 완성하였다. 전체적으로 조각의 솜씨와 비문의 필치가 섬세하고 우수한 작품으로, 17세기 초에 세운 석비로서는 특이하게도 고려시대 유행하였던 양식과 수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영암 성풍사지 오층석탑 : 보물 제1118호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533-1

연   대 : 고려시대

성풍사터에 서 있는 탑으로,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두고, 5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기단은 각 층 모두 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겨 쌓아 올렸으며, 몸돌의 모서리마다 건물의 기둥을 세운 듯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얇으며, 밑면의 받침이 3층까지는 4단이고, 4·5층은 3단으로 줄어들어 일정하지 않다. 처마의 네 귀퉁이는 아래에서 올려볼 때 뾰족하게 보일만큼 날카롭게 솟아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과 복발만이 남아있다.
탑안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고려 목종 12년(1009)에 이 탑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이 터에서 무너진 채 있었는데, 1986년 3층의 지붕돌과 5층의 몸돌, 지붕돌을 새로 만들어 복원해 놓았다. 석탑은 그 만든 시기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드문데, 이 탑은 기록을 통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고 또 거의 완전하게 복원된 작품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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