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부인사 문화재

소솔바람 2010. 8. 28. 21:05

부인사 석등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356

년  대 : 통일신라시대

부인사 대웅전 앞에 놓여 있는 8각 석등으로, 네모난 바닥돌 위에 3단의 받침을 두어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받침부분은 가운데기둥을 사이에 두고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대칭적으로 새겨 놓았다. 화사석은 다른 절터에 있던 것을 가져다 복원한 것으로 4면에 창을 두었다. 지붕돌은 처마가 길고 얇으며, 여덟 귀퉁이가 하늘을 향해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둥근 받침만 남아 있을 뿐 그 위의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진 상태이다.
비록 받침의 가운데기둥에 약간의 금이 갔지만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으며, 조각도 섬세하고 부드럽다. 각 부재가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뛰어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부인사 서탑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356

년  대 : 통일신라시대

부인사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부인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사찰로 추정되며, 절이 한창 번성할 때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승려들만의 승시장(僧市場)이 섰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이 탑은 금당터 주변에 쌍탑으로 건립된 2기의 석탑 중 서쪽에 있는 탑으로, 1966년에 복원되었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는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지고 그 받침돌만 남아있다. 기단은 각 면마다 기둥모양을 새기고 윗면에 2단의 괴임을 새겨 윗돌을 받치게 하였다. 탑신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고, 지붕돌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가 흐르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치켜올라갔다.
통일신라 후기 즈음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부인사 부도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356

년  대 : 조선시대

부인사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승려의 사리탑이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가장 많이 사용된 양식으로, 4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각 부분이 모두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상 ·중 ·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은 아래받침돌의 윗면에 연꽃을 두르고, 옆면에는 4마리의 사자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가운데받침돌은 4면에 꽃무늬를 장식하고, 나머지면에는 동물상과 동자상을 두었다. 윗면이 넓게 퍼진 윗받침돌은 연꽃을 새겨 둘러 놓았다. 탑신(塔身)의 몸돌은 위아래를 오므려 놓아 배흘림기둥 모양을 하고 있으며, 한쪽 면에는 ‘은통당(隱通堂)’이라는 승려의 호가 적혀 있다. 지붕돌은 윗면의 여덟 모서리선과 기와골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모서리가 마무리되는 각 귀퉁이마다 꽃조각 대신 도깨비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으며, 밑면에는 2중의 서까래를 새겨 겹처마를 표현하였다. 꼭대기에는 최근에 새로 만든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각 부분의 비례가 어색하고, 조각기법도 간략화되어 섬세함이나 화려함이 부족하다. 이러한 형식적인 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것은 ‘은통당’이라는 호를 쓴 승려가 누구였는지 밝혀져야 알게 될 것이다
 

 

부인사 일명암지 석등 :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22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356

년  대 : 고려시대

부인사 절마당에 놓여 있는 석등으로, 이 절에서 200m 가량 떨어진 일명암이라는 암자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것이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4각의 바닥돌과 3단의 받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는데, 바닥돌을 제외한 각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아래받침돌과 한돌로 이루어진 바닥돌은 옆면에 안상(眼象)을 2개씩 옅게 새기고, 아래받침돌은 윗면에 연꽃무늬를 둘러 새겼다. 그 위로 가운데기둥을 세워 윗받침돌을 받치도록 하였으며, 윗받침돌은 아래와 대칭되는 연꽃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화사석은 8각이라기보다 거의 4각에 가까워서 마치 직사각형의 네모서리를 세로로 반듯이 자른 모습이다. 긴 두 변에는 두 개의 창을 내고, 짧은 두 변에는 하나씩의 창을 뚫어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하였는데 다른 석등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독특한 양식이다. 지붕돌은 윗면에 부드러운 경사가 흐르고, 처마의 선은 가볍게 곡선을 그리고 있다. 꼭대기에 놓인 머리장식은 후에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전체적인 기본 구성이나 조각기법 등은 통일신라시대에 흔히 보이는 모습이나, 화사석에서 보이는 특이한 모습은 당시의 양식에서 벗어나 있어 좀더 시대가 내려가는 고려시대 전기의 것으로 추측된다.
 

 

신무동 마애불좌상 : 시도유형문화재 제18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235-7

년  대 : 고려시대

부인사계곡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불상은 지상에 노출된 큰 바위 위에 돋을새김한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길쭉한 얼굴은 풍만감을 주고 있다. 어깨는 당당하며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경직된 모습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손은 오른손을 위로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내리고 있는 모습이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위와 아래를 향한 연꽃을 새겼는데, 위를 향한 연꽃 속에는 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선으로 구별하고 있는데, 머리광배에는 고사리 무늬를 새기고 가장자리를 불꽃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불상은 길쭉한 얼굴, 경직된 옷주름 등의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