棣華亭(체화정)의 여름풍경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되었으며 2019년 12월 30일 국가지정 문화재(누정樓亭) 보물 제2051호로 지정된 이 문화재(文化財)는 안동에서 풍산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자리잡은 정자로서 과거 수백년 동안 서울 가는 무수한 선비들이 이곳에서 쉬어 갔다고 한다. 앞의 연못과 숲 그리고 나지막한 뒷산이 조화를 이루어 큰길가에 위치하면서도 한적한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정자는 예안이씨 진사(進士) 만포(晩圃) 민적(敏迪)이 영조37년(1761) 때에 처음 지어 학문(學問)을 닦고 그 후에는 조카인 용눌재(訥齋) 한오(漢伍)가 노부모(老父母)를 극진히 모시고 효성을 다하던 곳이다. 만포공(晩圃公)은 맏형인 옥봉(玉峰) 민정(敏政)과 함께 이곳에 기거하며 형제의 우애(友愛)를 돈독히 한곳으로도 유명하다. 체화정(棣華亭)이라는 당호(堂號)와 기(記)를 하지(下枝) 상진(象辰)이 지었는데 이 당호는 형제간의 화목과 우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시경(詩經)에서 인용한 것이다. 정면 3간, 측면 2간의 중충(重層) 팔작집으로 일층 부분은 누(樓)형식으로지상에서 띄워 2층 바닥을 이루었는데 일부는 높은 구들을 놓아 온돌방을 한간 들였다. 정자 앞에는 못을 파고 방장(方丈) 봉래(蓬萊) 영주(瀛洲)의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는 세 개의 인공 섬을 만들었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가 안기 찰방(察訪) 재임 때(1784∼1786) 이곳에 들러 아름다운 정취(情趣)에 감탄하여 담락재(湛樂齋)라는 현판(懸板)을 썼는데 지금까지 보존(保存)되어 있다. 수세기 동안 이 고장의 많은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시를 짓고 풍류(風流)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