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경주 남산 보물찾기(2)

소솔바람 2012. 2. 12. 00:47

경주 남산 문화재탐방(2)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을 가까이서 다시 보니 약6 m의 높이에 압도 당하는 느낌입니다..마애여래좌상 동편으로 암반의

절리가 발달해 낙석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마애여래좌상을 뒤로하고 아래로 내려옵니다..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 보물 제666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순환로341-126

연  대 : 통일신라

남산의 삼릉계곡 중부 능선쯤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이다. 불상은 불두와 불신을 따로 제작하여 결합 하였다. 이 불상의 상호는 파손이 심했기 때문에 뺨과 코,입 등 대부분을 복원 하였다. 불상의 몸은 당당 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가사는 왼쪽 어깨에만 두르고 오른쪽 어깨는 노출된 편단우견 식으로 걸쳤는데, 이 가사는 얇게 몸에 밀착하여 신체의 윤곽등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전강이에서 발목으로 옷주름이 비스듬히 흐르고 있다. 광배는 간결 하면서도 섬세하게 새겨진 화염문과 당초문 등으로 보아 우수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연화좌는 상대에 앙련을 3단으로 새겼는데, 꽃잎 안에 다시 꽃잎을 새겼다. 팔각의 중대에는 면마다 안상을 두었으나, 하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 불상은 풍만 하면서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신체표현, 대좌와 광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수법, 몸에 밀착시켜 입은 얇은가사, 발목으로 흐르는 옷주름 등으로 보아 석굴암 본존불상에서 완성된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양식과 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므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얼굴과 광배등이 크게 파손된 상태 였으나 2007~2008년 경주시의 의뢰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수.정비 하였다.

석조여래좌상 뒤에 위치한 바위 굴 입니다. 아마,조그마한 불상을 모시고 수행 정진한 장소로 사용하지 않았나 추측 해 봅니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72-6

연  대 :

자연 암벽의 동서 양벽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오른쪽 삼존상의 본존은 석가여래좌상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온화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향하여 서 있다. 왼쪽 삼존상의 본존 역시 석가여래로서 입상이며,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연꽃무늬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이다.
이 2구의 마애삼존상은 만들어진 시대나 조각자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오른쪽 암벽의 정상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선각육존불이 새겨진 상단부 바위에 오목홈을 파서 우천시 흘러내리는 빗물을 유도 처리하여 선각육존불에 빗물이 흘러내리지 않게한 석공들의 지혜에 감탄스럽습니다.

네모난 홈은 아마,선각육존불 보존을 위한 법당을 세웠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선각육존불 이정표 건너편 바위에 새겨진 홈은 바위를  두쪽으로 깨기위하여 파놓은 것으로 추측 됩니다.

삼릉 주차장으로 하산합니다... 탐방로에 돌로 바닥을 깔아 놓았습니다..

석조여래좌상

 이 석조여래좌상은 1964년8월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약30 m 남쪽 땅속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 되었다.

특히, 이 불상은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 옷을 동여맨 끈, 그리고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매듭이 매우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용장사 삼륜대좌불과 함께 복식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불상은 손과 머리가 파손 되었으나 몸체가 풍만하고 옷주름이 유려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우수한 조각품으로 평가된다.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72-6

연  대 :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는 이 불상은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머리 없는 불상은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지점의 소나무 숲속에서 출토되어 이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마애관음보살상의 입술의 붉은색은 인위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고  돌의 색깔이 입술 부분에서 자연적으로 붉은빛을 띠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구부러지게 자란 소나무이기에 건축물의 재료로 쓰이지 못해  행복하게 살아남은 소나무를 뒤로하고 경주 남산 보물찾기는 여기서 끝맺음을 합니다..수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남산은 경주시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잘 보존해서 후손에게 물려줄 문화유산 입니다.. 약5시간의 짧은시간에 수박 겉핱기식의 문화재 탐방으로  아쉬움이 남은 하루였습니다. 다음에는 서남산과 단석산,그리고 서악지구 탐방을 계획 해 봅니다.

경주 황오동 삼층석탑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성동동 산41-1

연  대 :

사자사(獅子寺)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터에 무너진 채로 있던 탑으로, 경주역을 이전할 때 그 기념으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해 놓았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기단의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의 1층 몸돌이 폭에 비하여 높이가 월등히 높고, 2·3층 몸돌 역시 폭은 거의 줄지 않은 채 높이만 급격히 줄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보다는 날렵함이 돋보이는 탑으로,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에서 고려 석탑양식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주는 소중한 작품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