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보물찾기(1)
경주남산 문화재 탐방
일시 : 2012년 2월11일 토요일
탐방코스 :포석정~윤을곡~ 가늠곡~금오봉~ 용장곡~삼화령~금오봉~약수곡~금오봉~삼릉곡~삼릉
2주만에 다시 경주 남산을 찾았습니다.지난번 남산 문화재 탐방에는 동남산과.탑곡 그리고 보문사지를 둘러 보았습니다.
이번 탐방은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 하기로하고 오전7시 동대구발 경주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경주역에서 다시 500번 좌석버스를 타고 포석정에 내려서 본격적인 경주 남산 보물찾기가 시작 되었습니다.
오늘 들머리인 포석정..시간은 오전8시30분, 아직 이른시간이라 정문은 굳게 잠겨있고.....신라 천년의 쇠퇴의 시작이었던
"포석정" 통일신라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에게 죽임을 당했던 비극의 장소를 담너머로 보고 윤을곡 마애불좌상을 찾으러
출발 합니다.
포석정에서 900 m 를 윤을곡 계곡을 따라 올라 오다가 좌측 이정표를 따라"윤을곡 마애불좌상"을 만나러 갑니다.
이른 아침 햇볕에 반사된 마애불의 모습이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경주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5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72-1
연 대 :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의 여러 계곡 가운데 하나인 윤을곡(潤乙谷)의 ㄱ자형 바위벽에 새긴 불상이다. 동남향한 바위면에 2구, 서남향한 바위면에 1구를 새겨 삼존불(三尊佛)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그 배치가 매우 특이하다.
중앙의 불상은 연꽃 대좌(臺座) 위에서 앉아 있다.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유난히 높고 크며, 얼굴은 긴 타원형을 이룬다. 턱은 각진 것처럼 표현하여 다소 완강한 느낌을 주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입에는 미소를 띠고 있어 대체로 부드러운 인상이다. 오른손은 마멸이 심해 확실하지는 않지만 손바닥을 보이며 손끝을 위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내려 무릎에 걸쳐 손끝이 땅을 향하도록 하고 있다.
오른쪽 불상은 본존불보다 조금 작고 위축된 느낌이 든다. 양감있는 얼굴은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양 어깨가 치켜 올라간 신체는 사각형으로 처리되었다. 상체가 짧은데 비해 하체가 길어서 비례가 잘 맞지 않는다. 오른손은 무릎에 얹어 손가락을 살짝 구부리고, 왼손은 배에 대어 약그릇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로 생각된다.
왼쪽의 불상은 3불상 가운데 조각 솜씨가 가장 떨어진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세부를 마무리하지 않고 턱이나 윤곽선 등을 선으로만 처리하여 전체적인 인상이 생생하지 못하다. 신체 또한 사각형으로 평평하고 양감이 없다. 왼쪽 불상의 광배 왼쪽에 ‘태화9년을묘(太和九年乙卯)’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이들 불상이 신라 흥덕왕 10년(835)에 조각된 것임이 밝혀졌다.
9세기 전반 통일신라의 불상양식 연구에 매우 중요한 예가 되고 있다.
"윤을곡 마애불좌상"을 감상하고 왔던길을 되돌아 내려오다가 "늠비봉 오층석탑"을 만나러 '부엉골'로 올라갑니다...
입춘이 지났건만 아직도 계곡에는 얼음과 매서운 바람소리가 소나무에 부딪혀서 휙!휙! 소리가 납니다.
한참을 올라가도 "늠비봉오층석탑"은 보이지 않고.... 아뿔싸,한참을 올라가서 좌측을 보니 계곡 저 건너에 '늠비봉오층석탑'이
주변 바위를 지대석으로 우뚝 서 있었습니다.. 지도를 보니 길을 잘못들어 '가늠골'로 올라 왔습니다...
금송정
"금송정"은 이곳 금오산에 있던 정자 였는데, 경덕왕때 음악가 "옥보고"가 거문고를 타며 즐기던 곳이었습니다.
"옥보고"는 이곳 "금송정"에서 바위들과 솔잎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파란하늘에 흘러가는 흰구름을 멋삼아 거문고를 뜯으며 세상 시름을 잊었다고 합니다.
이정표 화살표를 따라 "금오봉"으로 향합니다.. 금오봉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잘 정돈된 목재 데크 계단을 올라 "금오봉" 을 지나 용장골의 보물을 찾으러 갑니다.
높이 약13 m, 길이 25m 의 "상사바위" 웅장한 모습입니다..남산에는 큰 바위가 많아서 바위에 '돋을새김'을 한 불상이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습니다..
드디어, 최고봉인 해발468 m의 "금오봉"입니다...금오봉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용장곡"으로 옮깁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 보물 제186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
연 대 : 통일신라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石築)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절을 감싸고 뻗은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자연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바로 윗층 기단이 올려져 있다. 즉, 자연암석이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고 그 아래 바위산 전체가 또한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는 셈이다. 윗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조각을 새기고 2장의 판돌로 덮어 기단을 마감하였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져 원래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쇠막대를 꽂았던 구멍만 남아 있다.
쓰러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재건하였는데, 사리장치는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각 부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주변 자연과의 조화 속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용장사곡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고위봉" 의 모습과 주변의 풍경이 한폭의 풍경화를 감상하듯 합니다.
용장사곡 삼층석탑을 뒤로하고 암릉지대를 내려 가니 보물 제187호인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을 만났습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 보물 제187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
연 대 : 통일신라
경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어깨는 적당하고, 전반적으로 볼륨이 강조되지 않은 현실적인 체구로 어떤 승려의 자세를 보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양 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으며, 옷자락이 대좌(臺座) 윗부분까지 흘러 내리는데, 마치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자연기단 위에 있는 특이한 3층탑이라 생각될 만큼 특이한 원형(圓形)인데, 맨 윗단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이 석불은 특이한 대좌 뿐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며, 『삼국유사』에서 보이는 유명한 승려 대현(大賢)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유명한 불상이다. 대현의 활동 기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두가 없는 "석조여래좌상"은 몇가지 사건을 추측 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불상에서 제일 취약한 지점인 목부분이 부러질 수 있으며, 몽고침입.임진왜란.병자호란등 전쟁에 의한 피해, 마지막으로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일부러 불상을 훼손 한적도 있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전하고 있습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 보물 제913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
연 대 : 통일신라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의 뒤쪽 바위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원만한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내린 옷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아직 판독은 어려우나 글자가 10자 새겨져 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해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삼화령(三花嶺) 연화대좌
"삼화령 연화대좌"를 감상하고 금오봉으로 되돌아갑니다.. 금오봉에서 좌측 골짜기인 약수골로 내려가 대나무 밭을 헤치고
지나면 " 경주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의 거대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경주 약수계곡 마애입불상 :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1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
연 대 :
바위면의 양 옆을 30㎝ 이상 파내어 불상이 매우 도드라지게 보이며, 손이나 옷주름 표현에서도 10㎝ 정도로 깊게 돋을새김하여 입체감이 뛰어나다. 왼손은 굽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내려서 허리 부분에 두었는데, 모두 엄지, 검지, 약지를 맞대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입으며, 옷자락이 어깨의 좌우로 길게 늘어져 여러 줄의 평행 주름을 만들고 있다. 가슴 부분에는 부드러운 U자형 주름이 무릎 가까이까지 촘촘하게 조각되었으며, 다시 그 아래로 치마와 같은 수직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이 신체를 감싼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이어서 다소 단조롭고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선이 분명하여 힘이 있으면서도 유려하다.
이러한 옷주름은 월성 골굴암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이나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 등 9세기 후반의 불상에서 유행하던 것으로, 불상의 형태와 함께 제작시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다시, "금오봉"으로 올라옵니다...맞은편 '기암괴석'을 카메라에 담아 봅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58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72-6
연 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의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이다.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 살펴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있게 깊게 새겨서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의 마애불로 추정된다.
이제,삼릉곡의 남산의 나머지 보물찾기를 하면서 삼릉주차장 방향으로 향합니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경주국립공원관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