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법주사 문화재(1)

소솔바람 2011. 5. 23. 17:44

법주사(法住寺)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속리산내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며, 신라 진흥왕14년(553)에 의신조사에 의해 창건 된 후 776년 진표 및 영심스님 대의 중창을 거쳐 왕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8차례 중수를 거듭했던 법주사는 조선중기에 이르러서는 60여동의 건물과 70여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로서 위용을 자랑 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사찰 모든 건물이 소실되어 1624년경(인조2년)에 이르러 벽암스님에 의해 중창 되었습니다.

 

 법주사  일주문

속리산 사실기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67 호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209

연  대 : 조선시대

법주사 수정교 앞에 놓여 있는 비이다.
조선 현종 7년(1666)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당시 명망이 높았던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비문의 내용은 속리산 수정봉 위에 있는 거북바위에 얽힌 이야기에 관한 것으로, 불교와 유교의 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법주사 벽암대사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7 1호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209

연  대 :

법주사의 절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벽암대사의 행적을 적고 있다.
벽암대사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 법명은 각성이며, 벽암은 그의 호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해전에 참여하였고, 인조 때 남한산성을 쌓을 때에는 8도도총섭으로 임명되어 승려들을 이끌고 3년만에 공사를 완성시키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남한산성으로 천도하자 승려 수천 명을 모집하여, 호남의 군사들과 함께 적들을 섬멸하였다.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전쟁이 끝나버리므로 승려들을 돌려보내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인조 24년(1646) 가을 속리산 법주사에서 동문인 희언과 머물렀고, 희언이 화엄사로 가서 입적하자 그도 화엄사로 들어가 지내다가, 현종 1년(1660) 86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비는 넓직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후, 제법 묵직하고 투박한 머릿돌이 얹은 모습이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세운 것으로,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이 글씨를 썼다.

법주사 금강문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209

연  대 :

 

법주사 천왕문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46 호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209

연  대 : 조선시대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세워진 법주사의 정문이다. 그 후 몇 차례 다시 지어졌다가 조선 인조 2년(1624)에 벽암선사가 지은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5칸·옆면 2칸의 비교적 큰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1칸은 입구이고, 양쪽 2칸은 사천왕상을 2구씩 배치하였다.
법주사 사천왕문의 사천왕상은 우리나라 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법주사 팔상전 : 국보 제 55 호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209

연  대 : 조선시대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수리한 것이다. 벽 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1층과 2층은 앞·옆면 5칸, 3·4층은 앞·옆면 3칸, 5층은 앞·옆면 2칸씩으로 되어 있고, 4면에는 돌계단이 있는데 낮은 기단 위에 서 있어 크기에 비해 안정감을 준다. 지붕은 꼭대기 꼭지점을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으로 만들었으며, 지붕 위쪽으로 탑 형식의 머리장식이 달려 있다.
건물의 양식 구조가 층에 따라 약간 다른데, 1층부터 4층까지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고, 5층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설치한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은 사리를 모시고 있는 공간과 불상과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공간, 그리고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 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법주사 철확 : 보물 제 1413 호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209

연  대 : 통일신라

 사발(大鉢)의 형상을 한 법주사 철확은 높이 1.2m, 지름 2.7m, 둘레 10.8m, 두께 10∼3㎝의 거대한 크기로, 상부의 외반된 전이 달린 구연부는 둥글게 처리하였고 기벽(器壁)의 두께는 3∼5㎝ 정도이며 무게는 약 20여 톤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에 몸체에는 아무런 문양이나 기록이 주조되지 않아 제조연대·제작자 및 제조방법 등을 알 수 없지만, 용해온도가 청동보다 훨씬 높은 주철로 주조된 대형의 주물솥이라는 점에서 기술사적 측면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법주사의 사세(寺勢)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철확은 국내에 전하는 사례가 매우 희귀할 뿐만 아니라 거의 완벽한 조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법주사 원통보전 : 보물 제 916 호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209

연  대 : 조선시대

원통보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정사각형 1층 건물로, 지붕은 중앙에서 4면으로 똑같이 경사가 진 사모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에는 앉은키 2.8m의 금색 목조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관세음보살상은 머리에 화관(花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에는 자비로운 웃음을 머금고 있다.
단순하지만 특이한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 : 보물 제 1417 호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209

연  대 : 통일신라

법주사희견보살상은 지대석 위에 비교적 큰 향로를 머리에 이고 서 있는 흔치 않은 조각상이다. 희견보살상으로 불리어 오고 있으나 그 유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하부 대석과 신부, 그리고 향로 받침까지가 1석이고 그위에 발우형 향로가 올려져 있다. 부처님께 향불을 공양 올리는 독특한 조각상이다.
조각은 얼굴부분이 심하게 파손되었으나, 그 밖의 부분은 비교적 양호하다. 특히 향로를 받쳐 든 두 팔의 모습이나 가슴부위의 사실적 표현과 함께 배면에 나타난 천의의 표현기법은 절묘하여 같은 경내의 쌍사자석등을 제작한 동일한 작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법주사희견보살상은 비록 얼굴부분에 손상이 있으나 향로를 받쳐 든 전체적 구성미나 세부 조각수법이 독특한 조각상이다.

법주사 석조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70 호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209

연  대 :

법주사의 3천 승려들의 식수를 담아두던 돌그릇이라 한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아무런 조각을 하지 않은 간결한 모습이며, 규모는 길이 446㎝, 폭 240㎝로 제법 크다.
통일신라 성덕왕 1년(720)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