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지역 문화재 탐방(1)
군위 삼존석굴 : 국보 제109 호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1477
년 대 : 통일신라시대
경상북도 군위군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제24호)보다 연대가 앞선다. 이 석굴에는 700년경에 만들어진 삼존석불이 모셔져 있는데, 본존불은 2.18m, 왼쪽 보살상은 1.8m, 오른쪽 보살상은 1.92m이다.
가운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가 사라지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옷은 얇게 걸치고 있어서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옷자락은 넓은 무릎을 거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우리나라 불상에서 나타나는 최초의 예로써 의의가 크다.
같은 양식을 보여주는 좌우의 보살상은 각각의 머리에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冠)을 쓰고 있다. 가슴 앞에는 목걸이를 걸치고 팔에는 팔찌를 끼고 있으며, 옷은 길게 U자형의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고 있다. 이들 보살상은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목·허리·다리 3부분을 비틀고 있는 모습에서 새롭게 수용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 : 보물 제428 호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612 인각사 경내
년 대 : 고려시대
탑은 자연석으로 된 바닥돌 위에 8각의 아래받침돌을 놓았는데 윗면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가운데받침돌 역시 8각으로, 동물을 조각하였으나 뚜렷하지 않다. 윗받침돌은 8각이지만 원형에 가깝고, 단조롭고 소박한 연꽃이 새겨져 있다. 탑몸도 8각으로 정면에는 ‘보각국사정조지탑’이란 탑이름이 있고, 뒷면에는 문모양의 조각이 있으며 남은 6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과, 연꽃 위에 서있는 보살상(菩薩像)을 새겼다. 지붕의 두꺼운 추녀 밑은 위로 느리게 들려 있고, 낙수면은 급한 편이며 지붕선 끝부분에 꽃장식이 달려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큼직하게 올려져 있다.
탑비는 국사의 제자인 법진에 의하여 세워졌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지었으며, 글씨는 진나라까지 가서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만들었다. 지금은 비의 형체가 많이 훼손되었으나 다행히 비문은 오대산 월정사에 사본이 남아있다.
비문에 의하면 비를 세운 시기가 충렬왕 21년(1295)이므로, 부도탑의 건립 역시 일연이 입적한 해인 1289년에서 1295년 사이의 일로 짐작된다.
자연석으로 짜여진 지대석(地臺石) 위에 팔각하대석(八角下臺石)이 놓여 있는데, 상면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중대석에는 동물상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석도 팔각이나 원형에 가까워졌고 주위에는 연꽃 팔엽(八葉)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塔身)도 팔각인데 정면에는 '보각국사(普覺國師) 정조지탑(靜照之塔)'이란 탑명(塔銘)이 있고, 후면에는 문비(門扉)형이 있으며 남은 6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과 연판 위의 보살입상(菩薩立像)이 양각되어 있다.
이 탑은 원래 인각사(麟角寺)에서 동쪽으로 2km지점에 세워졌던 것이나 도굴배의 만행으로 쓰러져 있던 것을 1962년에 이곳으로 옮겨 보물로 지정되게 되었다. 탑비(塔碑)는 점판암(粘板岩)으로 조성되었는데 행간(行間)을 음각으로 구획하고 명문(銘文)을 각자(刻字)하였다.
현재 몹시 파손되어 있으나 이 비문은 강원도(江原道) 평창군(平昌郡) 진부면(珍富面) 오대산(五臺山) 월정사(月精寺)에 사본(寫本)이 있어 알 수 있다. 이에 의하여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21년(1295)에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보사 삼층석탑 : 보물 제 682 호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상곡리280 지보사 경내
년 대 : 고려시대
지보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아담한 모습이다.
기단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구성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고, 기둥 사이에는 무늬를 새겼는데, 아래층에는 사자 모양의 동물상을, 위층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넣었다. 기단을 이루고 있는 돌들이 모두 높아서 다소 우뚝해 보인다. 기단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별도의 판돌을 삽입하여 윗돌을 괴도록 하였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새겨두어 부처님을 모시는 방(감실)을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별도의 돌을 얹어 구성한 것으로, 밑면에 새겨둔 4단의 받침이 두꺼워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이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많이 깎여나가고 훼손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아쉬움을 느끼게 하지만, 조각 수법이 화려하고 외양이 단정한 고려 전기의 우수한 작품이다.
군위 대율동 석불입상 : 보물 제 988 호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691 대율사 경내
년 대 : 통일신라시대
대율사 용화전 안에 모셔진 불상으로 둥근 대좌(臺座)위에 올라서 있으며 높이가 2.65m이다.
민머리 위에 있는 낮고 넓은 머리(육계), 둥근 얼굴, 아담한 눈과 입, 어깨까지 내려진 긴 귀 등에서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손끝이 위로 향하도록 펴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몸쪽으로 하여 가슴에 대고 있는 독특한 모양이다. 양 어깨에 걸쳐진 옷은 가슴과 배를 지나 무릎까지 얕은 U자형 주름을 이루고 있다. 팔목에 새겨진 옷주름은 곧게 서 있는 긴 하체와 함께 당당하지만 경직된 인상을 풍긴다.
다소 딱딱한 면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얼굴 등을 통해 세련되고 당당한 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군위 양산서원(陽山書院)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296
이 서원은 1786년 정조10년에 설립된 지방교육기관이며 성현을 존숭하던 곳이다. 이 고을은 부림홍씨(缶林洪氏)의 세거지(世居地)로 고려말의 충신 문하사인 경재 홍노(門下舍人 敬齋 洪魯)선생과 조선조 좌참찬 겸 양관 대제학을 역임한 시호 문광공 허백 홍귀달선생, 이조좌랑을 역임한 대학자 우암 홍언충 선생의 충절(忠節)과 학덕(學德)을 기리기 위해 세분 선생의 영위(靈位)를 봉안한 묘우(廟宇)를 비롯하여 유생 강학(儒生 講學)을 위한 흥교당(興敎堂)을 중심으로 입나재 구인재,읍청루 반무당(立懦齋,求仁齋, 읍淸樓,半畝塘)등의 부속 건축물로 그 규모가 방대하였으나,1868년 고종5년 조정(朝廷)의 서원 철폐령으로 묘우를 비롯한 전 건물이 훼철(毁撤)되는 비운(悲運)을 겪었다. 그 후 1897년 광무원년(光武元年)에 현 규모의 강당(講堂)을 중건(重建)한 후 1989년에 중수(重修)를 하고 강당 후정(後庭)에는 장판각(藏板閣)을 지어 경재(敬齋)선생 실기(實記)목판과 조선조 후기 사학자(史學者)이며, 성리학(性理學)의 대가(大家)인 목재 홍여하(木齋 洪汝河)선생이 수찬(修撰)한 휘찬려사(고려사)[彙纂麗史(高麗史)] 목판(경상북도유형문화재251호)을 보존(保存)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