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 내소사 문화재 탐방
내 소 사 ( 來蘇寺 )
능가산 관음봉 기슭에 위치한 내소사는 백제 무왕34년(633)에 혜구두타 스님이 이곳에 절을 세워 소래사라 하였는데 창건 당시에는 대소래사,소소래사가 있었으나 대소래사는 소실 되었고 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가 남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현존 사찰은 조선조 인조11년(1663)에 청민선사에 의하여 중건 되었으며 고종2년 (1865)에 관해선사에 의하여 중수 되었고,그후 만허선사가 보수하였다.당초의 소래사를 내소사로 부르게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내소사로 불러 온것으로 추정된다.
일주문에서부터 천왕문에 이르기 까지 전나무 숲길이 길게 이어져 있고,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한 멋진 고찰이다.
일주문에서 내소사경내로 들어가본다.
길게 이어진 전나무숲......월정사와 광릉수목원.그리고 내소사의 600여미터의 곧게뻗은 전나무숲길이 장관이다.
전나무숲길을 걷다보니 어느덧 천왕문 앞에 이른다.
내소사 경내의 전경이다. 뒤로 병풍처럼 둘러진 바위산 안에 절이 자리하고있다 .
내소사 고려동종 : 보물 제277호
소재지 :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 내소사경내
제작년대 : 고려시대
내소사 고려동종은 원래 내변산에 있는 청림사에서 고려 고종9년 (1222)에 만든것으로, 조선 철종 원년(1850)에 이곳으로 옮겼다.전형적인 고려후기의 종으로 높이103CM,입지름 67CM, 무게는420KG이다.종을 매 다는 고리에는 용을 새겼고, 종 가운데에 세분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가운데 본존불은 연꽃위에 앉아 있고,좌우 협시상은 서 있는 모습이다. 종의 윗 부분과 아랫 부분에는 화려한 식물 문양을 새겼으며, 해바라기처럼 뾰족한 끝을 가진 연꽃 무늬가 종을 때리는 자리이다. 표면의 묘사수법이 정교하고 사실적인 이 종은, 통일신라시대 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고려시대 범종의 특징이 잘 드러나있는 작품이다.
내소사 대웅보전 : 보물 제291호
소재지 :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268 내소사 경내
건축년대 : 조선시대
이 대웅보전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조선 인조11년
(1633)에 청민선사가 절을 고칠때 지은것이라 전한다.
규모는 앞면3칸, 옆면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때 여덟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짜은 장식구조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인데, 밖으로 뼏쳐 나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우리 옛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또한, 앞쪽 문에 달린 문살은 꽃무늬로 조각하여 당시의 뛰어난 조각솜씨를 엿보게 한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 벽체 윗부분에 있는 부재 끝을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장식하였고 보머리에는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 건물의 화사함을 더해 준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맞추어 지붕 윗부분을 가리고 있는 우물천장으로 꾸몄다.불상 뒤쪽 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상"이 그려져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 공포와 단청에 관한 전설]
대웅보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남쪽천장의 공포 한곳에 목침 한 개가 비어있다.그리고 동쪽 단청에도 유독 한 곳에는
단청 칠이 없어 부자연스러운 곳이 보인다.
(공포에 얽힌 전설)
청민선사가 내소사를 중건 할때, 대웅보전 재건을 맡을 목수를 불렀는데, 그 목수는 묵묵히 나무만 다듬었다. 말 한마디 안하고 나무만 깎고 있으니 장난기가 발동한 한 사미승이 목수가 깎고 있는 목침 하나를 몰래 감추어 버렸다.
목침을 다 깎았다고 생각한 목수는 목침수를 헤아려 보니 하나가 부족함을 알고나서,목수는 자신의 수양이 아직 부족 한 것으로 생각해 청민선사에게 절을 지을수 없다고 했지만, 그 부족한 목침은 이 절과 인연이 안 되는것 같으니 그만 생각을 바꿔 절을 지어 달라고 사정했다. 후에, 사미승의 소행임을 알게된 목수는 부정 탄 재목은 쓸 수 없다고 생각해 그 목침을 빼고 대웅보전을 완성 하였다.그래서 지금도 법당의 안의 오른쪽 윗부분 공포내 5출목의 목침 한 개가 비어 있다.
(관음조의 전설)
대웅보전이 세워진 후 전각에 단청을 하고 벽화를 그릴 적임자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그러던 어느날 노인이 나타나서 자신이 벽화를 그릴 터이니 벽화를 그리는 동안 아무도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 달이 다 되어도 화공이 나오지 않고 기척이 없자 호기심이 많은 절의 선우스님이 살짝 문을 열고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화공은 없고 오색영롱한 관음조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 다니며 그림을 그리다가 들어오는 스님을 보더니만 단청 한 곳을 마무리 하지 못한 채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날아간 그 관음조는
능가산 중턱에 앉았는데, 그 때 부터 노스님이 그곳에 암자를 짓고 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스님을 관음조의 화신이라고 불렀으며, 그 이후에도 그 암자에 스님들이 살았으나 어느 때 부터인가 암자는 폐쇄되고 터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대웅전 동쪽 도리는 바닥만 채색되고 덧 그림이 빠져 있다고 전한다.기록에 의하면 이때의 목수는
호랑이가 현화(現化)한 대호선사(大虎禪師)이고,벽화를 그린 관음조는 관세음보살의 현화라고 전한다.
내소사 삼층석탑 : 전라북도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소재지 :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268 내소사 경내
축조시대 : 고려시대 추정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세우고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몸둘레에는 기둥모양을 조각 하였다.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둥근형태의 크고 작은 석재 2개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층 탑신에 비해 2층부터는 그높이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내소사 설선당(說禪堂)과 요사(寮舍)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소재지 :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석포리 268 내소사 경내
건축년대 : 조선시대
설선당은 인조18년 (1640)에 청영대사가 지은 것으로 앞면6칸,옆면3칸의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집이다. 오른쪽 한칸은 마루이고,앞면에서 남쪽2칸은 난방을 위한 부엌으로 큰 아궁이가 설치 되어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요사는 설선당과 함께 인조18년(1640)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앞면6칸,옆면2칸의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2층 맞배지붕 집이다. 1층은 스님들의 방과 식당,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2층은 마루로 식료품이나 물건을 보관할 수 있도록 각 칸의 벽면에 환기창을 설치 하였다. 설선당과 요사는 4면이 연결되어 중앙내부에 마당과 우물이둔 回자형의 특이한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내소사 경내에는 1,000년 된 당산목이 있다.이 나무는 느티나무로서 할머니 당산으로 불린다.
내소사 입구에는 700년 수령의 할아버지 당산이 있다.내소사의 당산제의 원형은 민간주도에 의해서 전승되어진 것이 아닌,사찰의 주도하에 오래토록 전승 되어 왔으며, 불교신앙과 민간신앙의 결합에 의한 복합신앙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토속신앙을 받들고 있는 기층민들을 사찰 내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임으로서 불교신앙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포교를 병행하는 형태였다.원형적인 부분에서 기존의 당산제와는 그 형식과 의식이 다소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으며,제례의식과 굿의 형태는 불교적인 의식을 따랐다.
내소사의 당산제는 음력1월14일,웃뜸 당산제는 음력1월15일 각기 치러졌다 한다.
내소사 경내의 1,000년된 할머니당산
내소사입구 700년 된 할아버지 당산
우리나라8대 명승중 하나인 국립공원 변산반도, 그중의 백제시대의 사찰 내소사...작년8월 광복절때
내소사를 방문하고 전나무 숲길과 병풍처럼 둘러싸인 바위안에 자리잡은 내소사에 매료되어 이번에도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변산반도를 찾는 관광객과 더불어 많은 사람이 찾는 내소사의 눈내린 겨울 풍경을
보러, 올 겨울 다시 한번 더 가고픈 사찰 중 하나라고 생각이든다.아마, 그때에는 연못을 청소하던 스님이
소복소복 쌓인 눈을 치우고 계실지........마지막으로 대장금 촬영지인 연못에 핀 수련과 백일홍을 담으며
내소사의 문화재 탐방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